옛날에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. 한 청년이 기차를 탔는데 앞에 한 중년 신사가 앉았더랜다. 짐 정리를 하다 담배를 꺼내들었는데, 중년 신사가 담배를 홱 낚아채더니 창 밖으로 던졌다.
황당해진 청년은 신사에게 물었다. “아니, 왜 담배를 밖으로 버리신거죠?”
신사는 근엄하게 말했다. “기차 안은 금연이네.”
청년은 더욱 더 황당해졌다. “아니, 제가 담배를 피려고 꺼낸 건 아니잖습니까?”
신사는 더욱 더 근엄하게 말했다. “자네가 담배를 손에 들었다는 건, 담배를 피겠다는 뜻 아니겠나?”
신사는 말을 끝맺고는, 점잖게 신문을 펴 들었다. 그러자 청년이 갑자기 신문을 뺏아 창 밖으로 던졌다.
신사는 화가 나서 청년에게 따졌다. “아니 왜 신문을 창 밖으로 던졌지?”
청년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. “신문을 펴 드신 걸 보니 당신은 여기서 볼 일을 보실 모양인 듯 한데, 여기는 볼 일 보는 곳이 아닙니다.”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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남의 의도를 함부로 판단하고, 게다가 자신에게 피해가 오지 않을 거라는 이유 하나로 그 의도를 왜곡하고 폄하하는 사람은 반드시 똑같은 방법으로 그 보답을 받게 된다.
요즘 다들 오가는 정보에 너무 쉽게 공감하고, 너무 쉽게 판단한다. 그리고 자신의 잣대 하나만으로 상대를 평가하고, 그 잣대를 상대에게 강요하는 일도 생긴다.
지금 1원의 행복에 관련하여, 1원의 행복 모금 행위 자체를 적대시 하는 사람들을 보았다.
하지만 주최자는 절대 자신을 위해 그 일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안다.
유명세? 1원의 행복이 신문 기사에 났을 때도 주최자는 자신의 실명을, 심지어 아이디 조차도 신문기사에 내지 않았다.
1원의 행복에 참여하는 그 누구도 강제로 참여한 사람은 없다고 믿는다. 자신이 1원의 행복에 강제 초대 되었다면, 그 강제 초대한 사람과 1:1로 문제를 해결할 일. 왜 순수한 의도 자체를 왜곡하려는지 난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.
게다가 아직 1원의 행복은 모금을 시작하지도 않았다! 시작은 12월달이란 말이다!
돈 한 푼 받지 않았는데 사기라고? 이건 어느 나라에서 통용되는 단어인가?
그리고 투명성과 관련해서 인데, 이 부분은 나도 솔직히 문제를 인정한다. 하지만, 아직은 자발적인 기부 대상자의 목록만 있을 뿐. 아직 한 달여의 시간이 남았다. 그 동안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일이다.
하기 싫으면 하지 않으면 되는 것이고,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면 되는 일이다.
왜 정확한 증거도 없으면서 지레 짐작하고, 지레 판단하고, 지레 공격해서 상처를 줄까?
(일 하면서 급하게, 조금은 격하게 쓴 글이라 제가 봐도 졸필입니다만, 의도의 전달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.)